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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타인과 타인
D / 트리거

  저주란 타인이 거는 것이다.

 

  사람을 저주할 땐 무덤을 두 개 파라는 말이 있다. 언젠가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는 사람을 저주할 땐 무덤 두 개가 아니라 백 개를 파야 한다고 말했다. 백 개를 파도 모자란다고 했다. 저뿐 아니라 주변까지 모두 버릴 각오가 없는 이상 누구도 저주하지 말고 살아가라 했다. 류노스케의 아버지는 객관적으로 썩 존경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으나, 류노스케는 아버지의 말을 제법 따랐다.

  류노스케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착하게 살아야겠다. 하지만 저주란 타인이 거는 것이다. 류노스케가 저주를 걸지 않더라도 타인이 류노스케에게 저주를 걸면 속절없이 응해야 한다. 아무도 타인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니 저주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츠나시 류노스케는 저주에 걸렸다.

  그 논제가 없다면 일련의 사건을 설명할 수 없다.

 

 

1월 3일

 

 

  “생일 축하합니다!”

  텐의 생일도, 가쿠의 생일도, 류노스케의 생일도 아니다. 오늘은 그저 친한 방송가 프로듀서의 생일이다. 그가 아는 방송인들을 죄다 초대하겠다며 가게 하나를 통으로 빌려 굵직한 판을 벌여둔 탓에, 애석하게도 단순히 생일 축하만을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날의 컨디션과 별개로 참석할 수밖에 없는 자리가 된다.

  그들이 몸을 담근 업계는 늘 이런 일이 가득하다. 사람과 사람의 일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당연하며, 당장의 일 뿐 아니라 추후의 일까지 아울러 판단을 내려야 했다. 그렇게 객관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런 삶의 방식이 체화된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쿠죠 텐은 초대장을 받자마자 ‘참석은 자율’이라는 말을 한 눈으로 흘렸다. 꼭 참석해야 해. 당부하듯 류노스케와 가쿠에게 초대 건을 전했다. ‘생일 축하’라는 사적인 계기로 모였으니 공적인 명분까지 충분한 자리다. (우스운 말이 지나갔다.) 이런 자리에서 제대로 인맥을 넓히고 관리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랬듯 언론과 여론의 손에 놀아나 금방 낭떠러지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덕분에 쿠죠 텐과 야오토메 가쿠는 퍽 비장한 태도로 파티에 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츠나시 류노스케는 어떤가?

  “PD님, PD님은 진짜 멋있는 분이세요. 이만한 사람들을 다 모을 수 있었다니, PD님의 인망이….”

  흘러들어오는 말만 들어도 얼추 예측이 갈 테다. 가쿠와 텐은 잠시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가엾은 일이다. 요즈음 류노스케는 그야말로 갈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한동안 마음 편한 술자리를 한 번도 가지지 못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 잔 나누고 싶다며 말을 줄줄 흘려댔었다. 그동안 스케줄이 꽉 차 있었기에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가쿠도 같은 갈증을 느꼈지만 류노스케와 같은 상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가 조급함을 드러낼 때, 그리고 초대에 응하겠다는 말에 눈에 띄게 표정이 밝아졌을 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해야 했을까!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류노스케는 테이블 서너개를 돌아다니더니 완전히 취해 버렸다.

  사실 기분만 아주 좋아질 뿐이지 술에 취한다고 큰 실수를 하는 인물은 아니니 내버려 뒀다. 그의 웃음소리는 유독 크고 굵었는데 띠고 있는 성질이 해방감과도 같았다. “네 녀석이 아직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우리 셋끼리는 못 마시니까.” “가쿠도 법에는 조금 예민하게 굴도록 해. 아이돌이라면 말야.” 가쿠와 텐은 기꺼이 류노스케 대신 그들의 본 목적을 잊지 않기로 한다. 프로듀서와 어깨동무를 하며 제 지역의 말을 읊기 시작한 모습을 보고도 말이다.

 

  새벽 한 시가 되어갈 때 즈음에야 가쿠가 아직도 무리 한가운데에서 웃고 있던 류노스케를 꺼내 왔다. 파티는 쉽게 끝날 기색이 아니었다. 얼굴은 비칠 대로 충분히 비추었고, 이 이상으로 남아있는 게 오히려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할 테니 잠시 바람을 쐤다가 돌아가자는 게 텐의 계획이었다. 가쿠와 텐이야 지독한 사회생활에서의 해방이니 이견이 없었으나, 역시 류노스케가 문제였다. 가야 한다고 말하자마자 내놓고 서운한 표정을 지어버리는 게 아닌가. 이 시점에서 텐의 마음이 약해졌으나 다행히 가쿠가 결단을 내렸다. “이제 가야 해.” 웬만하면 제 죽에 맞춰주는 가쿠마저 그러자 류노스케도 기세를 조금 죽인다. 눈썹을 있는 힘껏 늘어뜨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안쓰럽긴 했으나 평화를 맞을 생각에 마음이 편해지는 게 먼저였다.

  나란히 걷는 동안 류노스케의 걸음이 똑바르지 못하고 한 박자씩 어긋났다. 뚜벅, 뚜벅. 늘 함께 스텝을 맞춰온 덕에 발소리만 들어도 그의 상태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가 하는 말은 술에 잔뜩 취해서 하는 고백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있잖아. 축복이 사람 모양이면 분명히…. 가쿠랑 텐처럼 생겼을 거야.”

  “갑자기 그런.” 가쿠는 낯부끄럽다는 말을 삼킨다. “소리를 하고 그래?”

  “지금 같은 때 그런 기분이 제일 확실히 들어서….”

  헤헤, 류노스케가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다. 간혹 류노스케는 이런 식으로 타인의 경계를 잔뜩 흩뜨리는 행동을 했다. 이러면 저마다 품은 말이 모두 목 뒤로 홀라당 넘어가 버린다. 그래도 표현이 너무 과한 게 아니냐느니, 술 취한 사람 말은 와닿지 않는다느니….

 

  “정말이야. 무슨 일이든 가쿠랑 텐만 있으면 해낼 수 있어. 그리고 이제 나한테 나쁜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을 거야. 아니, 상관 없어.”

  “이왕이면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게 좋은데.” 텐이 말하자 류노스케가 크게 웃었다. 맞아. 사실 그게 제일 좋네. 그렇게 세 사람이 소소한 덕담을 주고받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가게로 돌아가던 참이었다.

 

  돌연 류노스케의 발이 공중을 휘저었다. 맞추어 걷던 박자가 흐트러진다. 텐과 가쿠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 쿵. 꽤 커다란 충돌음과 함께 류노스케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류!” 둘의 호명에 류노스케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가게에 들어가는 길에 바닥에 물이 얕게 고여 있다 싶더니, 그걸 그대로 밟고 보기 좋게 미끄러져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엉덩방아를 찧어 버린 류노스케가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하하, 나 많이 취했나?”

  “이 정도 미끄러운 건 무대 하면서도 많이 겪었잖아.” 텐의 걱정은 종종 날카로운 어투로 나온다. 크게 괘념치 않았다. 술에 취했기도 하지만, 결국 텐이 제게 양껏 베푸는 상냥함의 일부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가쿠가 류노스케를 일으켰다. 류노스케는 괜히 발을 번쩍 들어 제 구둣발을 확인했다. 물을 많이 먹긴 했지만, 텐의 말대로 이 정도 미끄러움은 퍽 익숙할 터였다. 원인은 지나칠 정도로 명확했다.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취했어. 류.”

  “응, 그런가봐….”

  내가 많이 취한 것도 텐이랑 가쿠가 없었다면 몰랐겠지? 아, 진짜. 텐, 가쿠, 너희는 내 축복이고…. 그가 덧붙이기 시작한 말에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불가항력이었다.

무사히 돌아간 세 사람은 주최자에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류노스케는 다시 그 물웅덩이를 지났으나 그 이후로는 아무리 미끄러운 바닥을 딛더라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 술이 깼나 보다.

 

 

1월 19일

 

 

  술자리 이후로 줄곧 지방 로케이션이 빠듯하게 잡혀 있었다. 나고야에서 도쿄로, 도쿄에서 후쿠오카, 삿포로…. 이제 삿포로로 비행기가 막 뜰 참이었다.

  “전날에 눈이 많이 왔대. 그래도 밤 사이 많이 녹아서 비행기가 못 뜨진 않을 모양이야.” 카오루가 퍽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잠시 가쿠는 어젯밤 돌아오는 밴에서 한껏 침울해져 있던 카오루의 표정을 떠올렸다. ‘…제때 시간을 못 맞추면 어떡하지. 우리 애들이 또 약속 때문에, 스케줄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리 중얼거리는 걸 언뜻 듣기도 했다. (텐과 류노스케는 자고 있었다.) 가쿠에게는 어쩔 수 없이 얼굴까지 상기된 채로 비행기의 행운을 이야기하는 카오루가 퍽 흐뭇했다.

라운지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카오루가 다음 일정 이야기를 했다. 공항에 미리 대기시켜둔 차량이 썩 괜찮은 차종이라 승차감이 다를 것이며, 삿포로에 가면 뭘 먹어야 한다는 등 보편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류노스케가 중간에 그 지역의 여름 축제 이야기를 했고, 몇 주 전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카오루는 잠시 류노스케를 노려본다. 금세 움츠러드는 게 안쓰러워 ‘맥주 먹고 싶다고 편히 말하라’며 덧붙였지만, 타이밍은 이미 늦었을 테다.

 

  라이브 홀로 향하는 차 안에서 카오루는 이야기했다.

  오히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 도로 컨디션이 더 좋아. 매번 이런 일이 있으니까 지자체에서 이미 대비를 해놓는 거지. 도쿄에 갑자기 폭설이 온다고 생각해 봐. 아마 그날은 대중교통으로 가는 게 더 빠를걸.

카오루의 말대로 도로는 매끈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으나, 눈이 내린 흔적은 숲이며 차가 다니지 못하는 곳곳에 만연했다. 세 사람은 온통 하얀 정경에 잠시 시선을 뺏긴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책을 갖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결국 그 ‘모든 상황’을 벗어난 상황이 하나쯤은 생겨. 그래서 평화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예측 가능한 범위의 일이 일어나는 현상의 개념일지도 몰라.

 

  무사히 시간 안에 도착하고 곧바로 리허설을 시작했다. 이름표가 붙은 티셔츠를 입고 동선에 맞춰 안무를 소화한다. 그동안 느낀 무대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후처리를 꼼꼼히 해둔 덕에 움직이기도 편했다. 리모델링 공사가 막 끝난 홀이라 기대하긴 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우렁찬 인사와 함께 무대를 내려왔다. 텐이 앞장서서 내려갔다. “세 번째 파트에서 박자를 완전히 놓쳤어. 가쿠.” 여느 때와 같은 피드백이었다. 뒤따르는 가쿠는 수긍하면서도 퍽 불만에 찬 투였다. “그건 인정하겠는데 곧바로 돌아왔잖아. 결국 동선은 지켰어.” 칭찬해달라는 뜻이다. 텐은 웃음소리와 한숨을 섞어 내뱉었다. “잘했어.”   “흥.” 가쿠가 콧바람을 불었다. 류노스케 역시 제 리허설을 복기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한 칸, 두 칸….

  “아.”

  두 칸 반을 내려갔을 때 류노스케의 몸이 붕 떴다. 뒤에는 아무도 없다. 멤버도 없고, 스탭도 없다. 계단도 층계가 잘 다듬어져 있어 가파르지 않고 발을 딛기 편했다. 하지만 꼭 누군가가 그를 밀어버린 것처럼, 류노스케의 몸이 중심을 잃고 붕 떴다.

  “류!” 두어 칸 정도 앞장서 있던 가쿠가 류노스케를 붙잡았다. 눈을 깜빡이는 사이 몸이 앞으로 훅 쏠렸다가 돌아왔다. 가쿠까지 중심을 잃고 발을 헛디뎠으나 무사히 넘어지진 않았다. “류, 괜찮아?” 류노스케는 한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는 가쿠의 부름을 온전히 인식하고 나서야 느리게 눈을 깜빡였고, 주변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아.” 텐의 걱정스러운 눈길이 보였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 들어왔다.

  마저 계단을 내려간 후, 류노스케는 이야기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민 거 같다고. 한껏 걱정을 감추고 있지 않던 텐은 망설이다 말했다. 하지만 류, 주변에는 널 밀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잖아.

 

 

1월 28일

 

  “성공적인 로케이션 마무리를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모든 스케줄을 마친 후 도쿄로 돌아왔다. 텐이 잠시 쉬는 사이 가쿠와 류노스케가 먼저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었다. 텐은 모르는 ‘로케이션 뒷풀이’가 열릴 예정이라며 텐의 귀갓길이 단단히 막혀버린 것이다. 텐은 앉아서도 한참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리 말을 했어도 흔쾌히 받아들일 제안 아닌가. 굳이 서프라이즈를 한 의도가 지극히 투명했다.

  “가끔은 류랑 가쿠가 나보다 더 어린 거 같아.”

  “무슨 말이야? 나이는 변하지 않는다고.” 가쿠가 크게 웃었다. “그 말이 아닌 거 알잖아.” 텐이 툭 쏘자 가쿠는 장난스레 텐의 어깨를 한 번 밀고 만다.

 

  자리를 미리 만듦에는 다 계획이 있었다. 가쿠가 삿포로에 있을 적, 딱 하루 오프가 생겼었는데 그사이 만난 지인에게 좋은 술을 얻어왔다는 게 아닌가. 많은 사람들과 나눌 양은 아니고, 딱 류노스케와 나누기 좋은 양인데 텐을 빼놓고 자리를 만들 순 없으니 텐까지 데려왔다는 것이다. 당당하게 텐의 휴식을 방해해놓고는, 칭찬해달라는 듯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꼴을 보자니 절로 고개가 양옆으로 움직인다. 이런 초대는 늘 달갑지만, 미리 말을 하라고 몇 번이고 귀에 꽂아주고 싶었다. 물론 소용 없음을 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단호하게 거절했을 거야.” 텐의 말에 가쿠와 류노스케가 웃었다. 류노스케가 텐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거절하지 않고 고분고분 받아들이자 둘은 더 기분 좋게 웃었다. 가장 먼저 텐의 잔에 물이 채워지고, 이어서 가쿠와 류노스케의 잔에 품질 좋은 술이 졸졸 떨어졌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꽤 우스웠다. 그대로 평화로운 술자리가 이어져야 할 순간이었다.

 

  쨍그랑.

 

  찬물을 끼얹듯 강렬한 파열음이 일었다. “….” 그리고 세 사람은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오래된 유리잔이라고 해도, 카페트 위에 떨어진 게 이리 산산조각이 난 광경은 누구도 본 적이 없다. 류노스케는 잔이 없는 손을 한참 떨었다. “누가.” 힘겹게 연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역시 가느다랗게 떨었다. “내 잔을 친 것처럼.” 텐은 곧바로 눈썹을 찌푸렸다. 가쿠는 취기에 흐린 시야를 날카롭게 굳히고, 천천히 류노스케의 말을 곱씹었다. 역시 금세 텐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 치우자.”

 

  가쿠가 먼저 일어났다. 익숙하게 베란다로 향했다. 자주 류노스케의 집에 놀러오기도 했고, 한때는 살기도 했고, 보통 술자리에서 가장 먼저 뻗는 이는 류노스케였기에 웬만한 집기가 어디에 있는지는 주인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다. 폐지를 모아둔 상자에서 폐지를 꺼내 가져오는 동안 가쿠는 알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고작 석 잔이다.

  제가 가져온 게 꽤 독한 술이긴 하지만 고작 석 잔으로 류노스케를 쓰러뜨릴 만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누가.’

  그 말을 하는 류노스케의 눈이 지독하게 또렷했다. 술에 취해 헛것을 보았거나 단순히 힘이 빠져서 잔을 떨어뜨린 게 아니거니와, 그 잔이 깨질 만큼 허술한 잔도 아니었다. 아찔한 감각을 무시하고 신문을 챙겨 자리로 돌아갔다. 텐이 류노스케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둘 다 술을 마셨으니까, 이건 내가 할게.” 하필 카페트 위에서 깨진 탓에 조각을 정리하기 번거로운 건 사실이었다. 말을 끝내자마자 텐이 가쿠에게서 신문을 뺏어 쥐었다. “난 괜찮으니까 도울게.” 류노스케가 말했으나 가쿠도, 텐도 그를 만류했다. 류노스케는 의자에 앉은 채 한참 눈썹을 늘어뜨린다. 이 순간 그는 강렬한 무력을 느낀다. 일정 궤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을 게 분명한데도 손이 한없이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몸에 전기가 튀고 있는 걸까. 그래서 관절이 이렇게 마음대로 움직이는 걸까. 손이 이렇게 떨리는 걸까.

 

  “병원에 가면 원인을 찾아 줄까?”

  “무슨 병원.”

  “……정형외과?”

  “………잠이나 자. 류.”

 

  장난스러운 가쿠의 목소리를 들으며, 류노스케는 부드럽게 눈을 휘었다. 그대로 잠시 눈을 감아 보았다. 시야가 차단되자 손가락 위로 알싸한 감각이 올라왔다. 따끔. 곧바로 눈을 떠 손가락을 보았다. 유리가 스치고 지나간 듯한 자국이 있었다. 핏방울이 카페트 위로 떨어졌다.

 

 

2월 11일

 

 

  류노스케의 차가 목적지 앞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 시동이 완전히 꺼지기 무섭게 텐이 문을 벌컥 열었다. 가장 어린 나이지만 평소엔 맏이 노릇을 일삼는 텐이다. 덕분에 자주 잊어버리지만, 그는 이렇게 작은 설렘도 감추지 못하는 귀여운 막내였다. (참고로 류노스케의 시선이다.) 그래서 도착한 곳은, 며칠 전부터 텐이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카페였다. (참고로 류노스케의 과장이다.)

원래라면 가쿠도 함께였겠지만, 갑자기 단독 스케줄이 잡히는 바람에 한 사람 치 부족하게 걸어야 했다. 날짜를 새로 맞출 생각도 했으나 오늘 이후로 틈이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이 먼저 나서기로 했다.

 

  “포장으로 주문하고, 구경만 하다 가는 거야.”

  “류, 자꾸 아이 타이르듯이 말하지 말아줄래.”

  “그치만… 오늘 텐은 엄청 귀여운걸. 동생 데리고 나온 거 같아.”

  “…….”

 

  류도 정말…. 텐이 웃음기 섞인 숨을 내뱉으며 문을 열었다. 류노스케도 뒤따라 벨트를 풀고 차를 나섰다. 잠금장치 위에 올린 손가락이 괜히 눈에 걸렸다. 이번에는 아무 일도 안 생겼으면 좋겠는데.

 

 

  변장이란 철저하게 해도 허술하게 해도 문제다. 모자며 마스크며 안경이며 다 갖춘 주제에 인파가 몰려 주문까지도 고역이었다. 간신히 인파를 헤치고 주문을 하나 싶으면 이제 직원을 위한 사인 한 장을 해야 했다. (사진은 정중히 거절했다.) 그 이후도 이제 문제다. 주문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걸려왔다. 두 사람은 일일이 응답했다. 피로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러한 온기며 관심을 먹고 살아야 하는 직업이다. 사람과 사람의 일에는 늘 성의를 다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일일이 싫증을 내는 행위는 진작 관두기로 했었다. 어느 날 강 건너의 넓은 회장을 바라보며 미래를 향한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주문 나왔습니다.”

 

  달가울 수밖에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의 서비스라며 쿠키가 잔뜩 담긴 쇼핑백과 음료 두 잔이 픽업 트레이 위에 올라와 있었다. 텐과 류노스케는 정중히 인사를 했다. 카페를 나오자 텐의 눈빛이 꽤 아쉬워 보였다. 그럴 만도 하다. 텐의 목적은 지금 그의 손에 들린 파르페 한 잔과, 고즈넉하게 잘 꾸며진 카페 구경. 이 두 가지였으나 인파에 밀려 카페는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류노스케는 웃으며 텐의 등을 토닥였다. “또 가면 되지. 다음엔 가쿠랑도 오자.” 조수석에 앉자마자 빨대로 파르페를 죽 빨아들인 텐이 이어 말했다. “이제 TRIGGER가 온다고 소문이 나서, 다음에는 사람이 더 많을걸.” 류노스케도 마스크를 내리고 커피를 한 입 빨아들였다. “그럼 또 그만큼 오래 있으면 되지. 텐도 그렇게 생각하.”

 

  말의 갈무리 대신 류노스케가 숨을 날카롭게 들이마시는 소리를 냈다. 쿨럭! 쿨럭! 류노스케는 홀더에 커피를 내려놓고 연신 어깨를 들썩거렸다. “류! 류!” 당황한 텐이 류노스케의 등을 두드렸다. 잠시 사레가 들렸던 것뿐이었다. 류노스케는 금방 진정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아. 괜찮아…. 텐.”

  “뭐 때문에 그래? 커피에 뭐가 있었어? 응?”

  “아니, 그게…. 너무 써서.”

  “…….”

 

  텐의 표정이 굳었다. 아, 또다. 류노스케는 요즈음 가쿠와 텐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특히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할’ 때마다. 누군가가 마음 쓸 일을 만드는 건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영 껄끄러웠다. 텐도, 가쿠도 자신을 질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성의는 마음 깊은 사랑이다. 사랑은 류노스케를 굳건하게 한다. 불편하게 하는 감정이 아니다. 하지만 류노스케는 자신을 걱정하는 텐과 가쿠의 마음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류노스케의 코끝이 알싸해졌다.

  아, 이건 저주다.

  아주 독한 저주다.

 

 

  텐은 류노스케를 운전석에 둔 채 재차 카페로 향했다. 커피의 냄새를 맡고, 맛을 본 직원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연신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썩은 원두가 섞여 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얼마나 철저히 위생 관련 지침을 지키는지, 원두를 어떻게 관리하며 유통기한을 어떻게 확인하고 있는지에 대해 반복하여 설명했다. 모든 프로세스에 이상이 없었으며 직원조차 짐작할 수 없는.

사고였다.

  왜 그런 사고가 류노스케에게만 일어나는 걸까. 텐은 모든 설명을 납득한 후 커피를 새로 사서 돌아갔다. 새 커피는 이상이 없었다.

 

 

2월 15일

 

  “류는 저주에 걸린 거야.”

  단호한 어투에 비해 입술을 떨어뜨리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가쿠와 류노스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 사람이 모두 위화감을 느낀 일을 제외하고도 많은 일이 있었다. 유독 류노스케는 많이 다쳤고 많이 흔들렸다. 같은 불행이 찾아오더라도 류노스케에게 정도가 심했다.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류노스케의 상황을 나쁘게 만드는 것처럼!

 

  “저주를 떨어뜨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반드시 타야 한다고 했어. 단순히 기다리라는 건 아니고…. 저주가 물러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타이밍을 잡는 거지.”

  “하.” 가쿠가 기가 찬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예전에 빌어먹을 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이 있어. ‘모든 일은 타이밍이다. 가장 빛나는 순간에 추락시켜야 처절하다.’…….”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예전에 저주와도 다를 바 없는 짓거리를 해 댔으니 옳은 말이긴 하겠어.”

  저주의 당사자는 그저 오가는 말을 듣기만 했다. 그러다 텐과 가쿠가 저주와 온갖 괴담을 이야기하고, 류노스케가 어떤 저주에 시달리고 있는지 추측할 즈음에 느리게 입을 열었다.

 

  사실 예전에 아버지가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어. 남을 저주할 땐 두 개가 아니라 백 개의 무덤을 파라고 하더라. 처음엔 단순히 누구도 저주하지 말라는 말 같았는데 아니었나봐. 세상에는 무덤이 이렇게나 많잖아. 그리고 누구도 그 안을 파 볼 생각을 안 하잖아. 무덤 중 일부는, 그렇지. 악의를 품은 사람들이 미리 파 둔 빈 무덤이 아닐까?

 

  류노스케는 줄곧 웃으며 이야기했다. 가쿠와 텐이 그의 몫까지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류노스케가 양손을 뻗어 둘의 얼굴을 각각 꼬집었다. “아야.” “하지 마.” 쭉 늘어난 발음이 우스워 소리로 표현했다. “아하하.” 류노스케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옛날 이야기를 하니 생각나는 게 있다며.

 

  난 오키나와에서 자랐잖아. 바다가 가까운 만큼 전설도 많았어. 괴담도. 그 중에, 어른들이 애들을 겁주기 위해 지어낸 얘기가 있었거든.

  그 때 가쿠가 “아.” 소리를 냈다. “나 그 얘기 들어본 거 같아. 예전에 술자리에서 무서운 얘기 할 때.” 텐은 아직 의아한 표정이었다. 가쿠가 잠시 류노스케의 눈을 봤다가 입을 그대로 다물었다. 류노스케에게 계속 마이크를 쥐여줄 생각이었다. 그 정도 신호로도 가쿠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바다는 너무 오랜 세월동안 우리 옆에 머물러 있었어. 그러니까 당연히 삶이 지루하겠지. 바다는 마을에서 가장 멋지고 근사한 아이를 잡아가려고 항상 틈을 노리고 있어. 그러니까 밤에는 바다에 가지 마. 항상 바다를 조심해야 해. 바다의 낙樂은 섬의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 뿐이라, 너처럼 근사한 아이는 금방 바다의 표적이 될 거야.”

 

  허벅지에 저를 눕히고 노래 부르듯 전설을 전하던 어머니의 말투를 흉내내 보았다. 그의 어머니는 이 이야기를 하며 늘 웃고 있었기에 그도 말미에는 미소를 띠었다. 텐과 가쿠도 덩달아 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문득 류노스케는 생각한다. 그들은 저와 이만큼 마음을 단단히 묶고 있었기에 그들이 먼저 자신에게 내린 저주를 눈치채준 것이다. 그러니 제가 어머니의 허벅지 위에서 듣고 잊어버린 해결책도 떠올려 줄 것이다.

 

  순식간에 걸출한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세 사람이 머리를 모으고 한참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틀어놓은 TV에서 뉴스 속보가 흘렀다.

  [도쿄도 시부야 구에서 연쇄 살인이….]

  [금일 오전에 보도한 실종 사건이 범죄 조직의 사주로 밝혀져…….]

  [생계 유지가 절실한 빈곤층을 대상으로 성행하고 있는 사기를 보도드리오니, 예방 차원에서 집중을….]

 

  “왜.”

 

  세 사람은 청각이 예민하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특히 갑자기 정적을 꿰뚫는 소리와 서로의 목소리라면 놓치지 않고 모조리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 가쿠는 혼잣말이라고 중얼거렸어도, 그 말은 결국 나머지 두 사람의 귀까지 흘러 들어가게 되어 있다. 가쿠는 이를 꽉 악문 채 말을 이었다.

 

  “왜, 저런 못돼먹은 사람들이 아니라 류가 저주에 걸려야 하는 거야….”

 

  그 답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저주란 타인이 거는 것이다. 그리고 저주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남이 건다면 그저 걸리고 마는 것이다.

 

  신기했다. 그 중얼거림에 머리가 탁 트였다. 류노스케는 수천 개의 무덤에 대해 생각한다. 이어서 무대에 설 때마다 보이는 약간 두텁고 동그란 모양의 라이트 무리를 떠올린다. 무덤과도 같은 모양이지만 그 빛은 자신을 추락시키지 않는다. 빛무리는 무덤의 모양일지라도 빛을 잃지 않는다. 잠시 공상 속의 황홀한 빛에 잠겨있던 류노스케가 곧 가쿠와 텐을 끌어당겨 안았다.

  “괜찮아.”

  그 말에 텐이 짧게 신음했다. 텐이 뭐라 말을 잇기도 전에 류노스케가 두 사람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빛을 채우면 돼. 빛을 채우자.”

  “내가 백 개의 무덤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를 만큼, 그게 무덤이 아니라 그저 경사가 더디고 봉우리가 엄청나게 많은 언덕으로 보일 만큼 빛을 채우면 돼.”

  “맞아. 시간의 흐름이야. 계절의 흐름이야. 이건…. 바다가 아니라, 평생 우리의 옆에 있는 바다가 아니라… 겨울의 저주야. 빛이 금방 저무는 동안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겨울의 저주야.”

  한참 류노스케의 말을 곱씹던 가쿠와 텐이 곧 류노스케를 마주 안았다. 류노스케의 등 위에서 가쿠와 텐의 손이 만났다.

  “계속 노래하자. 계속 온기를 나누자.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만큼. 우리가 있는 곳은 항상 뜨거운 열로 차 있도록.”

 

  이것이 올바른 답일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류노스케를 침범한 터무니없는 저주처럼, 그저 하던 대로 사랑을 퍼붓고 온기를 나누는 일이 터무니없이 커다란 방패를 만들어 동시다발적인 악의를 튕겨낼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깨져버린 평화를 사랑으로 메꾸어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었다. 세 사람은 한참 껴안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뉴스에서는 속보가 이어졌다. 낮고 일정한 톤의 목소리, 또렷한 발음과 정해진 내용, 끊어지지 않고 줄곧 유지되는 술자의 집중.

주문呪文이었다.

 

4월 1일

 

  겨울이 온전히 떠나가고 이제 완연한 봄이었다. 한참 껴안고 온기를 나눈 날 이후로, 류노스케에게만 작용하던 불행이 차차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봄이 오고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비로소 세 사람은 안심할 수 있었다.

  다음 스케줄로 향하는 차 안에서 류노스케가 조잘거렸다. 어제 귀가했을 때 거실로 빛이 환히 쏟아지는데, 단순히 그뿐이었는데 괜히 눈물이 날 뻔했다고. 자초지종을 얼추 들은 카오루도 그 이야기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는 정말 네가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잖니. 주름살 늘어난 거 같아. 작은 투덜거림 속에 틈틈이 스며 있는 사랑을 느낀다.

 

  도로를 가뿐히 달리던 차가 신호에 걸려 멈췄다. 전방을 한참 직시하던 카오루는 갑자기 생각난 이야기가 있다며 화두를 열었다.

 

  “지금까지 매니저로 일하면서 말야, 사실 비슷한 일을 몇 번 들었어. 특히 이미지가 좋은 연예인일수록 이런 일이 빈번하다고 하더라. 유독 그 사람이 다칠 뻔하거나 아슬아슬한 상황이 생긴다고.”

  “좋은 사람들 미워할 시간에 본인들이 좋은 사람이 되면 될 거 아냐.” 저주를 거는 이들의 악의를 이해할 리가 없는 가쿠가 투덜거렸다. 류노스케는 생각했다. 가쿠의 앞뒤 없는 정의감은 꽉 막힌 줄 알았던 길을 뚫어줄 때가 많다.

  카오루가 말을 잇는다. “저 녀석도 거기까지였어. 거봐, 너도 별 거 아니지. 그런… 추악한 마음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거란다. 죽은 팝스타의 시체를 도굴하는 거나, 추문을 뒤늦게 퍼트려 죽음을 모욕하는 거랑 비슷하지 않겠니.”

  “자신이 평생 가질 수 없을 바엔 아예 망가뜨려 버리겠다는 심리지. 그런 건 관심이라고 착각하기도 쉬우니까.” 텐이 고개를 끄덕이며 카오루의 말을 긍정했다. 류노스케는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살필 줄 아는 텐의 냉정함이 여러 갈래의 길 중 그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길을 찾아 준다.

그리고 류노스케는 이 모든 말이 향하는 방향을 생각한다. 모두 자신을 향한 걱정과 우려, 진심 어린 지지였다. 그럼 자신은 이 둘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어야 할까.

 

  “아하하.”

  “어이, 류. 갑자기 왜 웃어?” 가쿠가 부루퉁하게 물었다.

  “다시 겨울이 돼도 무섭지 않을 거 같아서.”

  “어머, 그럼. 너희한테는 내가 있잖니. 무슨 일이 생기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란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차 안에 틀어놓은 음악 사이로 카오루의 휘파람이 섞였다. 류노스케는 창문을 내리고 바람을 쐤다. 바닷가도 아닌데 바람에 바다 냄새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냄새뿐 아니라 소금기까지 먹은 듯했다. 눈이 따끔거려 잠시 감았다 떴다. 눈이 편하다 싶더니 차가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류, 창문 좀 닫아 줄래.”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류노스케는 창문을 올렸다. 창문이 고무에 꽉 물려 닫힌다. 바람은 들어오지 않는다. 류노스케는 생각했다. 그는 계속해서 창문을 닫으면 된다.

 

@

 

  그리고 겨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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